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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신규 간호사

오빠는 림프종 나는 일하기 싫어병에 걸려

by T없이 맑은 i 2024.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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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암에 걸렸는데, 부인이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일이 하기가 싫다. 하기 싫어도 너~~~~~무 하기 싫다. 나는 아무래도 일하기 싫어병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

 

처음에 합격해서 입사한 종합병원도 나름 체계를 갖추려고 노력하는 병원이었다. 신규 간호사에게 교육도 나름 신경써서 진행해 주었다. 다만 내가 걸린 병동이 수선생님부터 해서 병동 분위기, 업무 난이도, 같이 일하는 선임쌤들까지 아주 최악인 곳이었다. 동기들은 다들 착하고 괜찮았는데 나 같은 똥멍청이가 버티기엔 역부족이란 생각부터 들었다.

 

한 번은 이브날 무서운 기존 쌤이랑 일하게 됐는데, 업무적으로만 뭐라 하긴 했지만 뭔가 계속 취조하듯이 질문하고,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듯한 질문 공세를 퍼부어 댔다. 물론 나는 거의 대답하지 못했고, 심지어 어떤 질문에는 틀린 답의 연속이어서 엄청 무서운 얼굴로 공부해 오라고 나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날은 갑자기 올라온 환자들도 많았고 이래저래 너무 정신이 없어서 1시간 넘게 오버타임도 하고.. 우여곡절 끝에 퇴근하니 버스는 이미 끊겨 있었다. 그때부터 서러워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나는 이러려고 간호사 한 게 아닌데 하면서 말이다.

 

내가 이런 거 참으면서 일 할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 왜냐. 나는 30대 늘그막에 겨우 간호사가 된 인간이고, 내가 간호사가 된 이유는 뭐 특출 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먹고살려고. 정년 없는 라이센스가 나오는 직업이 필요해서 단지 그뿐이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다음날 수선생님 보자마자 면담 후, 울면서 퇴사한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아서 온전한 한 달 스케줄에 포함된 인력이 아닌 잉여 인력이었고, 이 때 빨리 그만두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래도 응사는 아니었고, 사직서도 쓰고 유니폼도 반납하고 깔끔하게 퇴사하게 되었다.

 

그렇게 약간 쉬다가 한 병원 신생아실에 합격해서 또 출근을 하게 되었다. 신생아실에 지원한 이유는 성인보다 간호하기 수월할 것 같았고, 인젝이나 이런 게 덜하고 업무 배우기에 난이도가 성인보다 낮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내 예상대로 며칠 지켜보니 몇 달 일하다 보면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은 정도의 업무 강도였다.

 

그러나 내가 또 얼마 채우지 못하고 퇴사한 나름의 이유들이 있었다. 우선 나를 빼고 대부분 기존 쌤들은 다닌 지 오래돼서 그런지 자기네들끼리 사이가 아주 돈독해 보였다. 그렇다고 나를 따시키고 이런 건 아닌데, 아예 아웃오브 안중이랄까? 물어보거나 가르쳐줄 거 있으면 친절하게 가르쳐주긴 했으나 자기네들끼리 하하 호호하는데 이 안에 비집고 들어가서 적응하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적응하기 어려웠다. 

 

또, 조무사랑 섞여서 일하는 데 누가 간호사고 누가 조무사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스페셜로 일하는 조무사 한 명은 확실히 알겠는데 이 분도 약간의 텃세를 부려서 좀 어이가 없기도 했다. 무엇보다 퇴사에 가장 강력한 도화선이 되었던 건 간호사인지 조무사인지 모를 기존 쌤 한 명의 태움이었다. 지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으나 나는 얘가 나한테 한 게 태움이라고 생각한다. 당한 사람이 태움이라고 느끼면 태움이지 뭐~

 

첫날에는 이래저래 얘기도 걸고 하길래 잘 알려주려나 보다 하고 말았는데 다음 날인가 근무에서는 내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뭔가 이상하게 한다 싶으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사람 꼽주듯이 얘기를 한다. 말투도 굉장히 띠꺼운 말투에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답답해 보였는지 짜증스러운 어투는 기본 베이스였다.

 

난 얘가 결혼해서 곧 그만 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무난해 보이긴 했는데 그 껴들기 힘든 묘한 분위기도 싫었고, 걔가 결혼으로 퇴사하기 전까지 같이 일하면서 버티는 것도 너무 싫었다. 나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참으면서 일할 이유가 1도 없었기 때문이다. 늘그막에 간호사 됐는데 적게 벌더라도 사람 편하고 그런 데서 일할래~ 이런 싹수없는 애랑 하루라도 같이 있기 싫어서 또 퇴사를 하게 되었다.

 

나중에 인사팀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나 들어오기 전에 퇴사한 사람이 3명이나 된다고 했다. 왜그런지 알만하다 알만해. 진짜 아니다 싶으면 어중간할 때 그만두지 말고 바로 그만둬야 한다.

 

그래서 나랑 맞는 곳은 어디일까 열심히 공고도 찾고 얼른 다른데 들어가야지 그러고 있었는데, 림프종이라는 날벼락이 떨어져서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일단 내 계획은 오빠 항암치료 일정이 정해지고, 오빠 회사 문제도 정리된다면 그거에 맞춰서 어떤 형태로 취업을 할지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지금 내 머릿속은 오빠의 항암치료 만으로만 가득 찼기 때문에 다른 새로운 데 들어가서 열정적으로 배우고 할 의욕이 전혀 없다. 그래서 올해는 오전 중에만 일하는 곳이나 단기 계약직 같은 곳에서 일하며 오빠 항암치료받는데 집중하려고 한다. 내가 간호사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오빠랑 행복하게 살려는 이유가 제일 큰 이유였으니까. 나한텐 오빠가 제일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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